꼬꼬무 121회 '우정 딜레마'
| 영화 같은 현실
은행에 알바로 취직한 복학생과 은행 과장 그리고 청원 경찰은 현금 6억 원이 든 가방 2개와 수표가 담긴 특수가방을 싣고 지점을 떠나 대전 둔산동으로 향했다. 대전 둔산동에는 지역 본부 은행이 있는데 근처 13개 지점에서 현금이 모이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꽉 차 있을 주차장이 텅 비어있었다. 가방을 내리는데 차가 서더니 총을 든 복면의 강도가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라고 했다.
강도는 천장에 총을 쏴보였다. 도망친 은행 직원들은 몸을 숨겼는데 아르바이트생은 돈 가방을 들고 가는 강도를 보고 후진을 해 그대로 강도의 차를 박았다.
놀란 강도들은 현금 가방 하나를 포기하고 그대로 도주했다. 강도가 챙긴 것은 현금 3억 원과 수표가 든 서류가방이었다.
강도의 차종은 검정색 그랜저였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남짓으로 강도는 총을 쏜 놈과 운전자 최소 2명 이상이다. 같이 있던 은행 과장은 강도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었다.
초유의 권총 은행강도 사건
범인들은 대담하게 번화가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낮에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차량 수배및 검문검색으로 도주로를 확보했다.
은행 건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는 주차장에서 낯선 흰색 차량을 발견한다. 목격 시간은 오전 8시 30분경이었다. 오전 10시가 지났을 때쯤 볼일이 생긴 남편이 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흰색차가 사라지고 검은색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검은색차는 시동이 걸려있었고 뒤쪽 문이 심하게 찌그러져있었다. 그 차는 범인들이 타고 있던 검은색 그랜저였다. 경찰이 이 차량을 발견한 것은 사건 발생 9시간이 지난 시각으로 범인들은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차량이 발견된 곳은 은행과 170m 떨어진 곳이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건물이었다. 범인들은 근처 주차장에 흰색 차를 미리 세워둔 채 범행에 쓴 검은색 차량은 최대한 짧게 운전해 재빨리 바꿔 탔다.
범행 차량 안에서는 성냥과 석유가 발견되었다. 차에 불을 지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불이 붙지는 않았다. 차적 조회 결과 범행차량은 도난 신고 차량이었다. 범인들은 머리카락 하나 남겨놓지 않았다.
범인의 총에 맞은 은행 과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과장의 몸에서 나온 총알을 분석하자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온다. 38 구경 리볼버에 사용되는 실탄이었는데 리볼버는 휴대는 간편하나 조준이 어렵고 명중률이 낮은 기종이었다.
이 총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이나 군 간부이다.
| 사건의 전말
2달 전 대전의 한 골목에서 주민이 트럭 밑에 쓰러진 경찰을 발견한다. 그는 인근 파출소에 노모경사이다. 머리와 척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이틀 만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노 경사는 골목길 순찰을 돌다가 뺑소니를 당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새벽 3시 대전 톨게이트에서 버려진 소나타 차량이 발견된다. 차량은 앞유리가 깨져있었고 보닛이 파손된 상태였다. 차주는 비상등을 켜두고 세워뒀는데 그대로 도난당했다고 한다.
차량 속 뺑소니 범인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을 친 이유는 명백하게 알 수 있었는데 노경사의 몸에서 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총은 은행강도 사건에서 사용된 권총과 동일한 기종이었다.
범행 1 : 2001년 10월 14일 정차 중인 소나타 차량 정도
범행 2 : 다음날 새벽 경찰 상해 및 권총 탈취
범행 3 : 검은색 그랜저 차량 절도
범행 4 : 범행 뒤 갈아탈 흰색 차량 절도
범행 5 : 12월 21일 현금수송차 강도 및 살해
| 용의자들
검은색 그랜저 차주는 원래는 선팅이 저렇게 진하지 않았다고 한다. 범인들이 추가로 선팅지를 추가로 덧댄 것이다. 경찰은 선팅업체를 탐문했는데 특이한 사례를 경험했다는 업체를 발견한다.
20~30대 남자 두 명이 와서 선팅지를 유리에 맞게 잘라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차종은 검은색 그랜저였다. 선팅업체 직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범인들이 현금운송시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경찰은 은행퇴직자 혹은 경비업체 관계자일 것이라 추정했다. 총기를 능숙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퇴직 경찰관과 군인도 수사 대상에 넣었다.
그 당시 대전 지역에는 은행 관련된 사건들이 많았는데 같은 해 5월에는 오토바이 2인조 수협 날치기 사건이 있었고 2003년에는 대전 은행동에서 현금수송차가 차량 통째로 도난당하기도 했다.
범인을 잡지 못한 채 2003년 3월 말 수사팀은 공식 해체되었다.
| 터닝 포인트
사건 발생 14년 후 2015년
대전 경찰서에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이 꾸려진다. 14년 만에 둔산동 은행사건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사건 당시 범행 차량에서 검은색 손수건과 마스크가 수거되었다. 당시에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미제팀은 이 증거품을 국과수에 재의뢰한다. 분석 결과는..
한 명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확인됐다.
추출한 유전자 정보가
2015년 충북 경찰이 불법 컴퓨터 오락실에서
수거한 증거품 가운데 담배꽁초 1점과 일치한다.
경찰이 확보 중인 누군가의 DNA와 일치는 하지만 신원불상의 DNA와 일치하는 상황이었다.
2년 전 충북 경찰팀이 불법 게임장을 긴급 단속했는데 그런데 현장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모두 도주한 상태였던 것이다. 남은 건 수십 대 오락기와 담배꽁초뿐이었다. 단속에서 DNA를 채취하는 일은 드문 일인데 그곳에서 14년 전 사건의 범인 DNA가 나온 것이다.
담배꽁초는 발견 당시 불법 게임장 운영자들만 머무는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범인은 운영진일 가능성이 컸다. 운영진으로 추정되는 사람만 300명이었다. 경찰은 명단을 작성하고 각각의 DNA를 채취하기로 한다. 수사 상황을 고려해 당사자 모르게 은밀하게 DNA를 확보해야 했다.
경찰은 확보한 DNA와 리스트를 대조해 불일치 인원을 지워나갔다. 경찰은 이 작업을 4년 8개월 동안 진행했지만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불법 게임장에 정보원을 다시 만난 경찰은 기억을 다시 해보라고 하는데 정보원은 게임장에 잠깐 일했던 사람이 있다며 이름이 정학이었다고 한다.
이름으로 검색을 한 경찰은 몽타주와 얼굴이 같은 사람이 찾아낸다. '이정학'
이정학은 시동 걸린 차량을 훔친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이정학의 뒤를 미행하다 이정학이 버린 물건을 확보한다. 감점 결과 이정학의 DNA와 100% 일치로 확인된다.
경찰은 20년 간의 이정학의 행적을 수사하고 공범의 존재를 추적한다. 6개월의 잠복 끝에 경찰은 이정학을 체포한다. 이정학은 언젠가 올 것 같았다며 순순히 체포되었다.
| '악연' 만나면 안 될 사이
공범은 이정학의 절친 이승만이었다. 이정학은 이승만의 주민등록 번호를 경찰에 알려주었다. 이승만의 소재는 강원도 정선으로 확인되었다. 이승만은 강원도 카지노 근처 찜질방에서 체포되었다.
이정학은 총을 쏜 건 이승만이라 주장했다. 본인은 총소리 후 현금 가방만 챙겼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이정학이 자백을 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았다.
이정학은 DNA라는 직접 증거가 있지만 이승만은 공범의 자백뿐이었다.
이승만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양아치였다. 경찰은 이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승만을 보고 '너는 양아치다'라고 하니 이승만이...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한 말을 한 놈이 양아치지. 내가 왜 양아치입니까?
경찰은 이때가 대질 조사할 타이밍이라고 보고 영상 통화를 하기로 한다. 이승만은 이정학이 다 자백했다는 얘기에 범행을 자백한다.
| 둘만의 평생 비밀
둘은 동창이지만 이승만이 한 살형으로 주종관계였다. 둘은 불법 음반 복제로 단속에 걸려 경제적 타격을 입은 후 함께 범죄를 저지르며 지냈다.
2000년 이정학이 출소한 뒤 둘은 대전에서 다시 만난다. 처음에는 은행에서 고액 인출자를 대상으로 날치기를 하려고 했는데 은행을 지켜보던 둘은 현금수송차 운행 시간을 파악하게 된다. 그렇게 놈들은 범행 계획을 바꿔 돈 가방 탈취에 성공한다.
둘은 이 일을 죽을 때까지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한다. 돈은 이승만이 2억 천, 이정학이 9천만 원을 나눠 가졌다.
| 배신과 폭로
이승만은 이정학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말해서 체포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승만은 재판과정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이승만은 진술을 바꿔 범행은 인정하지만 총을 쏜 건 이정학이라고 한다. 둘은 서로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 결과 이승만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정학은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승만이 총을 쐈다고 판단했는데 군대를 안 간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은 육군 수색대 출신이었다.
배신감을 느낀 이승만은 엄청난 폭로를 하기 시작한다.
- 두 친구의 또 다른 미제 사건
1심 판결 얼마 후 전북경찰청 미제팀에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에 내용은 전주에서 벌어진 미제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며 대전교도소에서 보내왔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승만이었다.
전주 백 경사 사망사건
전북 지역에 오래된 미제사건이었다. 대전 은행 강도 사건이 일어난 이듬해인 2002년 9월 자정 파출소에서 홀로 근무하던 백 경사는 누군가의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살해당했다. 당시 범인은 백 경사의 38 구경 권총과 실탄을 탈취했다.
이 편지를 받은 전북경찰청 미제팀은 대전교도소로 달려갔다. 이승만은 자신이 이정학이 훔친 총을 숨겨놓고 실탄을 버렸다고 한다. 총을 숨긴 곳은 울산의 한 여관의 천장이라고 한다. 여관은 재개발로 철거되기 직전이었다.
이승만의 진술대로 천장에서 백 경사의 권총이 발견되었다. 둘은 서로가 진범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둘은 서로를 공격하면서 여죄를 줄줄이 고백했다.
대전에서 발생한 4억 7천만 원이 든 현금수송차량 탈취 사건도 자신들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자백했다. 대법원에서 둘은 사이좋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