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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0대 왕 경종, 게장과 같을 먹고 독살당했다? 경종의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은 사망 50년이 지나도록 이어진다. 경종의 사망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즉위 4년 만에 게장과 감을 먹고 죽고 마는데 기력을 잃어가던 경종에게 음식과 탕을 올린 사람은 이복동생 영조였다고 하는데 영조는 왜 재위 기간 내내 이복형 경종 독살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벌거벗은 한국사 92회 줄거리 리뷰 시작합니다.
벌거벗은 한국사 92회
|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정말 독살당했나?
숙종 15년 1688년 10월 권내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아이의 이름은 경종 이윤이다. 숙종은 28살 당시에는 조금 많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다. 경종의 어머니는 바로 장희빈의 아들이었다. 숙종은 이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자로 책봉하는데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인현 왕후는 23살로 충분히 임신할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숙종은 후궁 장희빈의 아들 이윤을 원자로 책봉했다.
경종이 원자로 책봉된지 약 4개월 만에 인현왕후는 궁에서 쫓겨난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장희빈을 질투했다며 중전의 자리에서 폐위시킨다. 공석이 된 중전의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은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이었다.
경종이 7살 되던 해에 숙종은 장희빈을 다시 후궁으로 강등시킨다.
갑술환국
1694년 숙종이 집권 세력을 뒤바꾼 사건
당시 조정은 서인과 남인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장희빈이 중전이 되면서 장희빈을 지지하던 남인이 힘을 얻게 된다.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갑술환국을 벌이고 이는 남인 세력이 줄어들고 서인 세력을 키우는 결과로 나타난다.
환국을 통해 인현황후는 다시 중전으로 복권된다. 경종은 친모가 살아있음에도 인현왕후가 중전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어머니가 뒤바뀌게 된다. 경종은 어머니에게 예를 다했고 인현왕후 역시 세자를 사랑으로 대했다.
조정에서는 세자를 새로 책봉하자는 얘기가 나온데 후궁 최씨가 아들 연잉군을 낳았기 때문이다. 조정은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인 서인이 집권을 하는데 그때 서인들이 둘로 나뉘어서 소론은 경종을 지지하고 노론은 연잉군을 지지했다.
당시 조정은 노론이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이 세력은 경종을 몰아내고자 약점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인형황후가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장희빈의 처소에서 인현황후의 초상화가 발견되면서 경종의 친모 장희빈이 저주를 내려 인현왕후를 죽게 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된 것이다.
1701년 10월 숙종은 장희빈을 자진하게 하라고 한다. 이는 장희빈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장희빈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종은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아버지에게 청하나 숙종은 이를 거절한다. 자신도 죽여달라는 경종의 청을 거절한 숙종은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을 죽였다.
시간은 흘러 경종이 30살이 되던 해 1717년 7월 19일 노론의 우두머리 이이명이 숙종과 독대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이후 숙종은 세자 경종에게 대리청정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갑작스러운 대리청정 명령에 쌍수를 들고 반대에 나선 소론 세력에도 숙종은 경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킨다.
경종이 대리청정을 하던 3년 후 숙종이 재위 46년 만에 사망을 한다. 경종은 조선 최장기 세자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경종이 왕위에 오르고 한 달 뒤 생모의 호칭을 바로 잡으라는 상소가 올라온다. 당시 장희빈은 죄인으로 사망해 희빈이 아닌 장 씨로 불리고 있었다.
Q. 장희빈의 작호 회복을 요청하는 유생에게 경종이 내린 명령은 무엇일까? 유배를 보낸다.
노론은 상소를 올린 유생을 비난한다. 경종은 상소를 받아들였다가 노론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유배를 보낸다. 유생은 유배지로 떠나는 길에 살해를 당한다.
노론이 장악한 조정에서 경종은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었다. 노론은 후계자가 없는 경종을 탓하며 경종을 압박했다. 경종은 연잉군을 세제에 책봉한다. 왕의 권위를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었다.
노론이 경종을 압박해 연잉군을 세제에 올린 이유는 후사가 없던 경종부부가 양자를 구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연잉군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던 노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었다.
소문의 근원은 19년 전 죽음을 앞둔 장희빈이 아들 경종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소원을 이야기한다. 아들 경종을 본 장희빈은 아들 경종의 아랫도리를 잡아 뜯어버렸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이 씨 집안의 대를 끊어버리겠다.
결국 친모 장희빈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돼 양자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고 2달이 지난 1721년 10월 10일 대신들은 왕세제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맡겨달라고 요청한다. 이 말은 경종에게 왕위에서 물러나라는 이야기와 같았다. 경종은 자신에게 이상한 병이 있어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허락한다.
거듭된 소론의 반대에 경종은 반나절 만에 대리청정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3일 뒤에 경종은 다시 대리청정을 허락한다. 그런데 조정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왕권에 정면 대응하는 것으로 비칠까 노론도 소론과 함께 대리청정을 반대한다.
경종은 소론 대표 신하 우의정 조태구를 불러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거두겠다고 한다.
경종은 연잉군을 앞세워 왕을 몰아세운 노론에 대한 대반격으로 노론 대신 4명을 사흉으로 칭하며 파직을 명하고 귀향을 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주요 관직을 차지하고 있던 노론 세력이 모조리 사탈관직당한다.
신축환국
1721년 신축년에 노론에서 소론으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
경종은 상소를 통해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루된 모든 대신을 잡아들여 사형에 처했다.
임인옥사
1722년 노론의 경종 암살 계획이 밝혀지면서 일어난 옥사
위기를 느낀 연잉군은 경종을 찾아가 자신이 어떻게 세제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겠냐며 눈물로 호소한다. 경종은 연잉군은 세제를 유지하라고 한다.
무더운 여름 병석에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던 경종이 게장과 감을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5일 후 경종이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때 경종의 나이 37살이었다.
연잉군이 왕위에 오른고 노론은 다시 조정에 세력으로 집권하게 된다. 상소가 하나 올라오는데 게장과 감으로 경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인물이 바로 영조라는 것이다.
경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영조가 병세로 누워있는 경종에게 인삼과 부자를 처방하라고 했다고 한다. 어의는 자신들이 처방한 약과 같이 복용하면 사망할 수 있다고 한다. 영조는 어의를 크게 꾸짖고 자신이 말한 약을 올리라고 한다. 인삼과 부자를 먹은 다음 날 경종은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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